헤어나오기 힘든 중독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던 부부의 지친 어깨를 기장의 바다는 언제나 말없이 도닥여주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달리느라 서로를 돌아보지 못했던 시간 잠시 쉼표가 되어준 여행에서 부부는 비로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PeopleTogether1-image1 © 백종현

마음이 힘들 때마다 함께 찾는 곳

"이곳은 우리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에요" 해동용궁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주성 씨(가명)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진다. 불교신자가 아님에도 이곳에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그의 곁에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미경 씨(가명)가 서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부부에게 해동용궁사는 마음이 힘들고 막막할 때마다 함께 찾게 되는 곳이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부처님께라도 매달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왔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오직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기도만이 절로 나올 뿐이다.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어 그 어느 곳보다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으며, 진심으로 기도를 하면 누구나 꼭 현몽을 받고 한 가지 소원을 이룬다는 영험한 곳으로 유명하다. 정암화상이 바닷가에서 용을 타고 승천하는 관세음보살을 꿈에 보았다는 이야기에서 해동용궁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용궁(바닷속 궁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과 바다가 맞닿은 육지의 끝자락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걸려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성 씨는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기도 후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단했던 몸과 마음에 힘이 솟아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경내로 향하는 길목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십이지신상은 해동용궁사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해의 동물을 찾아 함께 사진을 찍는 재미를 안겨주는 곳이다. 부부는 나란히 서 있는 십이지신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장엄하게 서 있는 일주문으로 향했다. 일주문을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길 사이로 이어진 108계단에 들어서자 마침내 푸른 바다를 품은 해동용궁사와 마주했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버텨온 시간

부부가 카지노출입 영구정지를 신청한지도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개인파산 후 끝이 보이지 않는 도박빚 변제의 어려움을 견디기 힘들어 생을 마감하려고 마음먹은 적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버티고 또 버텼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밖에 안 납니다." 주성 씨의 떨리는 목소리에 미경 씨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도박이라는 걸 모를 때는 가족하고도 친구들하고도 사이가 좋았는데 내가 거기 빠지면서 부터는 어디서 돈을 구해가지고 도박을 하러갈까 생각 뿐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8년을 도박에 빠져 살던 주성 씨는 잃은 돈을 되찾겠다는 마음에 아내 미경 씨까지 카지노로 끌어들이고 말았다. 자식들 돈까지 빌려가며 매일을 카지노에 살다시피 하는 시간이 벌써 몇 해가 흘렀고 결국은 부산에 내려갈 교통비조차 없을 만큼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이들이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클락을 처음 찾은 것은 부산에 내려갈 교통비라도 받아가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클락 첫 상담에서 영구정지를 마음먹으면서 전문위원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전문위원이 연결해준 부산도박중독치료센터에서 반 년 동안 부부가 각자 상담을 받으면서부터 겨우 중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이후 클락에서도 여섯 차례 함께 상담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다. 클락의 직업재활 지원으로 미경 씨는 1종 대형면허 취득에 성공했고 재무 상담을 통해 채무 해결을 위한 도움도 받았다.

PeopleTogether1-image2 © 백종현

버리고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

"이제는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일만 하고 삽니다." 부부의 도박빚 변제는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지만 1년 반 동안 아내는 택시 운전, 남편은 건설 노동 등 쉴 틈 없이 일에 매달린 덕분에 꽤 많이 정리가 되었다. "올 여름이면 아마도 지인들 빚은 다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옛 이야기에 표정이 어두웠던 주성 씨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미경 씨의 손을 잡았다. "바다 보면서 둘이 1년 반 동안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부부는 채무가 정리되는 대로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을 모실 생각이다. 농산물 판매도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컴퓨터학원도 다니고 있다.

"욕심을 버리면 가족이 보입니다. 얼마 전에 부모님 모시고 돈 3만2천원 주고 밥을 사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사소한 그 행복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아가지고... 옛날에는 정말 그걸 몰랐거든요. 가족이 보이면 그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침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 부부에게 행복한 앞날이 펼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