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소년 비행(非行)을 논의할 때면 도박 중독은 음주, 흡연에 밀려 존재감이 떨어지는 주제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부는 청소년 도박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올해 11월 법무부가 주관하는 '청소년 온라인 불법 도착 근절 범부처 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청소년에게 도박 게임을 제공한 사람은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를 진행하며, 기소 뒤에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961년 도박을 합법화한 영국은 청소년 도박 중독을 막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교육이 공교육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개인·사회·보건 및 경제 교육(PSHE·Personal Social and Health Educatiion)을 통해서다. 영국은 1988년 교육개혁법에 근거해 PSHE를 도입했다. PSHE는 2020년 보건 교육 커리큘럼에서 도박 예방 교육을 의무화했다.

英 청소년 인구 5%가 '도박 중독'
PSEH가 갬블어웨어와 손잡은 이유

영국도박위원회(UKGC)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영국 내 도박 중독 청소년은 약 23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영국 전체 청소년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수치다. 대다수는 온라인 도박이나 스포츠 도박을 했고, 특히 온라인 도박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이용률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파악됐다.

PSHE는 영국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키는데 필요한 지식과 자질, 기술을 개발하는 교과다. 2006년 영국에서는 5만 명의 현지 교사와 전국 학교들로 구성된 네트워크 조직 PSHE 협회(이하 협회)가 조직됐다. PSHE 협회는 비영리 단체 갬블어웨어(Gambleaware)와 함께 <PSHE 교육으로 도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핸드북을 제작, 일선 교사들에게 배포해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에 힘쓰고 있다.

23페이지 분량의 이 핸드북에는 △도박 관련 연구 및 이론 △교육 전 고려 사항 △학습 계획 수립 △효과적인 교수법 등 교사가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교사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학년별 맞춤 수업을 진행, 학생들에게 도박 중독의 폐해와 위험성을 소개한다.

스마트폰을 하는 청소년 © Shutterstock

점점 낮아지는 도박 권유 연령대
교사들 "교육 측면서 '도박 예방' 다뤄야"

PSHE와 갬블어웨어가 손을 잡은 건 도박 중독의 대표적 취약계층이 청소년인 반면, 도박을 권유하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고, 권유 수법도 훨씬 정교해졌다는 판단에서다.

핸드북은 "연구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도박을 시작한 사람들은 나중에 도박 장애를 앓을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회 전반에 도박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대다수 학교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도박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가 자체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 22%와 중학교 교사 절반 가까이는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의) 도박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청소년 도박'이 앞으로 더 많이 다뤄야 주제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협회는 이에 대해 "청소년 도박 문제를 교육 측면에서 다뤄야 할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 관행 간 불일치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빅시오 올해의 발명상 수상 마인드웨이 AI, 빅시오 올해의 발명품 수상 © https://gamblingcomplianceawards.com/

'충격 효과'는 금물
예방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핸드북에는 도박 예방 교육을 진행할 때 주의 사항도 담겨 있다. 핵심은 '도박'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고학년일수록 더 명시적·직접적으로 다루되, 암시적 접근도 활용해야 한다. 핵심 개념을 수업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이거나, 다른 주제 또는 이야기에 빗대 교육을 진행하는 식이다.

충격, 공포,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청소년들에게 '충격 효과'를 주기 위해 도박 관련 자극적인 내용,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도박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협회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충격 효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박 중독 교육은 일회성일지라도 도박 중독률 측면에서 학습자와 비학습자 간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청소년 시기는 삶의 바탕이 되는 태도, 가치관, 특성이 정립되는 중요한 때다. 도박 예방 교육이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고 협회가 판단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