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 단단하고 힘이 되는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준 양희은은 뜻밖의 말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역시 나 자신의 면면을 잘 용납하지 못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그럴 수 있어'가 그토록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불완전한 모습을 흐르듯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1
우리는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며, 양희은은 큰 슬픔과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의 이삼십 대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나자, '함께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솔직하게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친한 사람은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의무적으로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 이 생각이 구름처럼 피어오를 때 연락을 하고, 서로 엉겨가며 추억을 쌓아간다는 양희은. 우리 눈에 꼭 붙어 보이는 별도 실은 수억 광년의 아득한 거리를 두고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선선한 바람이 통할 만큼의 거리가 있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대신 아파할 수 없고, 대신 죽어줄 수도 없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기에 소중한 관계는 더욱 거리를 두어 아끼는 것, 그것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면서도 양희은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비결이었다.

PeopleLife-image1 © 유튜브 <세상을 바꾸는 시간>

#2
쓸데없이 목과 어깨에 힘주지 말고, 힘을 빼자

"첫날은 넘어지는 것부터 배워요" 자전거 타는 법을 몰랐다던 양희은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자전거 타기를 배웠던 때를 회상한다. 나도, 자전거도 다치지 않게 넘어지는 법을 먼저 배우고 나서야 길을 벗어나지 않게 바퀴를 굴리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목과 어깨에 너무 힘을 주지 말고, 시야를 멀리 보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자전거는 매번 그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휙휙 꺾였다고 한다. 잘 배워도 자전거 하나를 제대로 몰고 가기가 쉽지 않다. 그는 사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한다. 다 배웠지만 양희은에게 자전거 타기는 아직 무섭다.

#3
완전히 바닥을 친 다음에야 자기 돌봄도 가능하더라

양희은은 자신이 '적당히', '엄살떠는 법'을 도통 모르는 편이라고 한다. 차라리 어느 선까지 자신을 고되게 만들어 고꾸라지도록 내버려 둔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채 쌓이다 보면 마치 위태롭게 선 탑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얹었을 때, 별안간 탑이 송두리째 무너지듯이 어느 순간 자신도 무너지게 된다. 그때의 ‘나’는 좌절감도, 우울감도 이미 겪은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에게 너그러워진다.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배우고 오지 못했다. 그러니 누구나 넘어지고 꺾일 수 있다. 그것이 양희은이 말하는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의 배경이다.

PeopleLife-image2 © 유튜브 <세상을 바꾸는 시간>

#4
그럴 수 있어

양희은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자신이 쓴 '양희은의 이별 노트'를 읽어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어린 느티나무 잎새처럼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살면서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음과 함께 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망연한 사실 앞에서,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전한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기에, 그럴 수 있다고.

"그럴 수 있어"
양희은은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힘있게 말한다.
완전히 바닥을 쳤다는 것은 타인을 모두 이해할 바탕이 생겼다는 뜻이다.
나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자.
누구에게나 삶은 '그럴 수도 있는' 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