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박 4년차 광호 씨(가명)와 단도박 6년차 정식 씨(가명)는 영구정지 후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이하 클락)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 사이다. 막막하기만 했던 영구정지 직후 단도박 선배로서 다정하게 이끌어준 정식 씨 덕분에 광호 씨는 도박을 완전히 끊고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다. 영랑호의 잔잔한 물결처럼 맑고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과 함께 특별한 속초여행을 떠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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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떠오르는 그곳, 영랑호

강릉에서 태어난 광호 씨에게 속초는 익숙한 지역이다. 속초에 본가를 두고 강릉으로 진학한 친구들 덕분에 고등학생 시절 여름방학마다 속초를 찾아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을 올랐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영랑호의 깊고 푸른 빛에는 그 시절 광호 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광호 씨와 정식 씨가 영랑호를 찾은 그날도 여전히 호수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넓은 호수의 물결에 비치는 푸르른 하늘의 빛깔은 마치 청소년기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광호 씨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잔뜩 들떠 있는 친구의 표정을 바라보는 정식 씨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번졌다.

함께 견뎌낸 시간만큼 더 깊어진 우정

이제 막 80대에 들어선 두 사람에게 클락은 함께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일상의 큰 부분이다. 오랜 시간 인지장애를 앓던 아내와 사별 후 밀려오는 외로움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찾아갔다가 카지노에 깊이 빠져버린 광호 씨였기에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도박이 아닌 일상의 다른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영구정지를 결정하기까지도 너무나 힘겨웠지만 클락에 영구정지를 신청한 이후에도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던 광호 씨에게 단도박 선배 정식 씨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자신을 다정하게 이끌어준 정식 씨를 비롯한 단도박 선배들이 없었다면 단도박 이후를 견디기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광호 씨는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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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달래보려 다시 시작한 도박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업을 찾고, 그 직업을 바탕으로 사업가가 된 광호 씨에게 아내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였다. 1년에 한두 번 아내와 함께 고향을 찾을 때 바닷가를 드라이브하며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아내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꽉 차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 호기심에 강원랜드를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그의 삶에 도박이 이렇게 깊이 들어와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광호 씨 부부에게 카지노는 그저 고향에 올라갈 때마다 한 번씩 들르는 즐거운 여행지일 뿐이었다. 아무리 재밌게 도박을 즐겼어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사업 하느라 바빠서 카지노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50대 초반쯤 아내에게 치매 초기 증상이 찾아오자, 광호 씨는 그 잘 되던 사업도 다 접고 병원 가까운 지역으로 집을 옮겨 아내를 간호하는데 모든 것을 쏟았다. 몇 년 후 남편인 자신까지 못 알아볼 만큼 증상이 심해지자 아내를 요양원으로 옮겼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찾아가 함께 산책하며 돌보던 소문난 남편이었다.

오랜 병간호 끝에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덧 60대가 되어 홀로 남은 자신이 있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던 그 때, 문득 카지노 생각이 났다.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외로움을 도박은 달래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홀로 카지노를 찾은 광호 씨의 일상은 그 때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있기에 견딜 수 있는 시간

카지노 근처에서 먹고 자고 하며 모아둔 재산 다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되어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길로 클락을 찾아가 3년 정지 신청을 했고 2박 3일 워크샵 등 클락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며 단도박 선배인 정식 씨와 친구들을 만났다. 그 후 영구정지 신청을 하기까지 가장 큰 확신을 준 것도 역시 그들이다. 단도박자 공동체와 함께라면 다시는 도박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지금도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요” 광호 씨와 정식 씨는 아바이마을로 자리를 옮겨 뜨끈한 순대국을 함께 먹으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단도박 인연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클락 단도박자 모임을 통해 꾸준히 봉사도 다니고 있다. 주변 도박 중독자 친구들에게 단도박을 권하고 클락으로 이끄는 것도 광호 씨와 정식 씨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함께 손잡고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반드시 벗어날 수 있어요” 앞으로도 두 사람의 단단한 믿음과 선한 영향력으로 수렁에 빠져 있는 많은 이들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