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 출신의 섬 소년은 <오징어게임>으로 일약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반짝 스타'는 아니다. 위하준은 무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해, 조연과 단역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외모도, 기가 막힌 연기력을 가진 배우도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입고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갔더니 목표했던 꿈들이 하나씩 이뤄졌다. 롤모델이었던 배우 이병헌과 마주 서서 연기했고, 누아르의 로망도 이뤘다. 데뷔 10년을 앞두고 '대세'라는 수식어가 붙는 배우가 됐지만, 위하준은 오늘도 '꾸준하자' '변했다는 소리 듣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ThemeInterview-image1 드라마 <최악의 악>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다시 글로벌 주목 "남성팬들 반응 이렇게 뜨거운 건 처음"

"원히트원더가 아님을 증명했다", "악마가 이렇게까지 섹시하고 위험해 보인 적은 없었다"
싱가포르 한 매체는 위하준을 이렇게 평가했다. 위하준은 2021년 전세계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이후 디즈니+ <최악의 악>으로 또 한 번 글로벌 주목을 받고 있다. 위하준은 "해외 팬들의 반응은 SNS로 접하고 있다"며 "팔로우도 많이 늘고 있다"고 웃었다.

10년 동안 작품을 하고 있지만, 남성팬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웠던 건 처음이다. <최악의 악> 공개 후 의외의 장소에서 부쩍 높아진 인지도를 실감하고 있다.

"이전에는 거의 여성 팬들만 알아봤어요. 이제는 헬스장에 가면 남자들이 다가와서 '잘 보고 있다'고 해요. 얼마 전 한 행사에 갔는데 <피지컬100>, <강철부대> 출연자 분들이 다가와서 <최악의 악> 너무 잘 보고 있다며 한참 이야기를 했어요. 정기철의 힘이죠"

<최악의 악>은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 강남 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준모(지창욱 분)가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드라마다.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일본, 홍콩, 터키 등 각 지역의 톱10에 오르며 K-콘텐츠 열풍에 힘을 싣고 있다.

위하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흥 범죄 조직의 보스 정기철 역을 연기했다. 무표정한 눈빛에서 오는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아우라가 화면을 압도한다. '조직 보스'의 날카로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재회한 첫사랑 의정(임세미 분)과는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순애보 연기를 펼쳐야 했다. 위하준은 단순히 '악'으로 분류하기보단, 자신과 닮은 지점을 찾았다.

"주변에서는 정기철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해요. 기철이 조직을 이끄는 '못된 놈'이라는 것을 제외하면요. 내 감정을 표현 안하고 성공에 대한 집착도 있고 한 길만 쭉 걸어오는 것도 비슷해요. 무뚝뚝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잘 챙기고, 연애할 때는 엄청 아껴주고 상반된 면모가 있죠. 친구들이 '그냥 너 같다'고 했어요"

위하준은 '보스' 정기철을 표현하기 위해 비주얼적인 부분에도 힘을 줬다. 한 작품 안에서 체중 증량과 감량을 동시에 했고, 메이크업으로 거친 질감을 표현했다.

"촬영 초반에는 일부러 몸을 키웠다가, 점점 피폐해지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5~6kg을 감량했어요. 촬영 시작할 때 75kg까지 증량했고 후반부에는 66kg로 감량했어요. 처음에는 옷이 딱 맞았는데, 뒤로 갈수록 옷이 커져서 애로사항이 있었어요. 또 눈썹을 산 모양으로 세게 그린다거나, 피부를 메이크업으로 톤 다운시키고 거칠게 표현했어요. 주근깨도 그렸죠"

배우 생활을 하며 줄곧 꿈꿔왔던 누아르. <최악의 악>으로 마침내 로망을 실현했다. 친구들과 흙바닥에서 장난 치고 뛰어 놀던 그 시절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저는 전라남도 완도, 시골에서 자랐어요. 흔한 태권도 도장도 없었어요. 산에서 뛰고 타이어 밟고 공중에서 돌면서 놀았죠.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삼아 했던 제스처들을 어른이 돼서 실제 연기로 한다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로망이 이뤄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작품을 도전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ThemeInterview-image2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최악의 악> 포스터 © 넷플릭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배우의 꿈을 안고 떠났던 소년, 자랑이 되다

위하준은 연기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간다. 2015년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데뷔해 공포 영화 <곤지암>, <걸캅스>, <미드나이트>, 드라마 <18어게인>, <배드 앤 크레이지>, <작은 아씨들> 등 작품 수는 20여 편에 달한다. 짧은 대사가 전부였던 그는, 이제는 작품을 이끌고 있는 대세 배우가 됐다. 배우가 되고 싶어 섬을 떠났던 소년은, 이제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린 고향의 자랑이 됐다.

"어릴 때 우연치 않게 춤을 추면서 무대에 처음 섰는데 박수를 받으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그래서 사실 처음 서울에 상경했을 때에는 배우보다 무대에서 박수 받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어쩌다 연기를 한 번 배워볼까 싶어서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꿈을 꾸게 됐죠"

남들의 눈에는 부침 없이, 꾸준하게 달려온 배우다. 스스로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이겨내고 버텨왔다. <최악의 악>은 가장 '나다운 나'를 보여준 작품이다.

"보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항상 촬영하면 압박감부터 들고 잘해야겠다는 강박과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좋은 사람들 옆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까 내려놓는 방법을 알았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는 큰 좋은 영향과 에너지를 준 작품이라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채로운 색깔을 위해 달린 10년, 2024년도 달린다

요즘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촬영장에 가고 있다. 위하준은 차기작 <졸업> 촬영에 한창이다. <졸업>은 베테랑 학원 강사 서혜진(정려원 분)과 10년 만에 돌아와 그의 마음을 휘젓는 발칙한 제자 이준호(위하준 분)의 은밀하고도 달콤한 현실 로맨스를 그린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안판석 감독과 재회하는 작품이다. 손예진의 동생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던 그가, 이제는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작품을 이끌게 됐다.

"지금 제대로 된 사랑 이야기를 찍고 있어요. 어릴 땐 멜로가 낯간지러웠고, 액션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어요. 이제 제대로 된 멜로를 한 번 할 때가 됐다 싶었는데, 10년이 걸렸네요. 정려원 누나는 털털하고 밝아서 티키타카가 잘 맞아요. 전 밝고 긍정적 에너지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캐릭터가 정제돼있어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제한 두는 게 많았는데, 이번엔 참 재미있습니다"

위하준은 <오징어게임2>에도 출연한다. 그는 <오징어게임> 시즌1에서 실종된 형을 찾아 '오징어 게임'이 벌어지는 섬에 잠입하는 황준호로 치트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저는 별로 안 나와요(웃음). 결국에는 안 죽었고, 계속 형을 찾아다녀요. 제 역할이 엄청나진 않지만, 시즌2를 통해서 많은 나라에 얼굴을 계속 비추게 됐어요. 시즌2 또한 박진감 넘치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매력 있어요. 저도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다채로운 색깔을 위해 10년을 달렸던 위하준. 2024년에는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