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킬로미터.

차로가 닿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의 거리였다.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완성한 것은 1988년 간이역 '양원역'을 손수 세운 원곡마을 사람들의 소망과 노력이다. 양원역이 세워지기까지 마을 앞에는 기찻길만 놓이고 역이 없어, 사람들은 울퉁불퉁한 철길을 딛고 위험천만한 여정을 떠나야 했다.

포털사이트에 '전국 철도 노선도'를 검색해보면, 작은 철로들이 마치 혈관처럼 전국 팔도 구석구석에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혈관이 우리를 먹고 숨 쉬게 돕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꿈꿀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곳곳에 놓인 철길의 소중함은 퍽 각별하다.

영화 <기적>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 ‘양원역’의 일화를 각색하여 만든 것으로, 철도 애호가라면 알고 있을 양원역 설립 일화에 가족 드라마를 더해 극적인 스토리의 몰입을 돕는다. 주인공 준경은 위험한 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차역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 말도 안 된다며 가족도 준경을 반대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해달라 외치는 준경의 목소리에 점차 많은 사람들이 손을 거든다. 그리고 마을 밖에서도 이들의 노력을 주목하기 시작하며, 마침내 이 작은 마을에도 열차가 서게 된다.
영화에서는 끊어졌던 가족 간의 대화도 간이역과 철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역을 세운다'는 하나의 꿈이 꾸준히 이어지자,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과 세상 밖의 인연들이 그 꿈을 중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기적>의 이장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루 네 번, 열차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간이역 하나가 생긴 것만으로도 세상과 사람은 이토록 쉽게 이어진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분명 선(善)이다. 그 선은 작은 꿈을 놓치지 않는 꾸준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답하는 사람들의 연결이 모였을 때 비로소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기적  (2021)

장르  드라마, 가족
상영 시간  117분
감독  이장훈
출연  박정민, 이성민, 임윤아, 이수경 外

영화 <기적>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