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에 펼쳐진 약속

“어머니께서 최근 다리 수술을 받으셔서 걷기가 불편하세요. 편안하게 앉아서 풍경을 감상할 수는 없을까 하다가 케이블카 생각이 나더라고요.”
오늘처럼 설레는 드라이브 길이 있었을까. 새 출발을 다짐하고 나서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차 뒷좌석에 어머니와 딸을 태우고 달리니, 길고 지루한 여행길에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십여 년만에 처음 어머니, 딸과 함께 달리는 여행길. 겨울 장맛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마음이 들뜨는 것을 감출 수 없는 상문(가명) 씨였다.
세 가족이 영남 알프스에 도착하자마자 발걸음이 향한 곳은 케이블카 정류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안개가 낀 날씨가 애를 먹였다. 영남 알프스가 자랑하는 억새평원은 희미하게 윤곽만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하늘 공원에서 보이는 백호 모양의 백호 바위와 산 중턱에 걸린 안개가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문 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머니께 조금 더 좋은 풍광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케이블카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 좌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셨다. 창문 앞으로 손을 이끌자 별다른 말 없이도 느껴지는 따스한 위로가 있었다. 눈만 반짝거리던 딸도 아빠의 옆에 서서 풍경을 감상해본다. 경상도 출신의 무뚝뚝한 세 사람은 말 없이, 용서와 반성을 나누었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하늘 길도 다시 보니 새삼 파도 하나 없는 평온한 바다처럼 보였다. 선로 길이만 1.8km, 상부역사 해발 1,020m 고지까지 국내 최장거리라는 케이블카인데 시간은 짧게 느껴지는 듯했다.

성실했던 아들의 몰락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들은 언제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는 효자였다. 일본 현지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아들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또 긍정적인 성격으로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고 취미를 살려 작은 한식당을 열기도 했다. 그런 아들이 무너진 것은 법이 개정되면서 무역 사업이 내리막길을 타면서부터였다.
매사에 근면하게 살아가던 아들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어린 딸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겨두고 누군가 “도박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빠져 자신의 모든 돈과 시간을 도박에 바쳤다. 돈을 벌어 다시 사업을 재건하겠다는 마음 반, 허탈한 심정을 채우기 위한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아들은 자그마치 12년의 시간을 도박에 빠져 살았다. 아들은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다가도 늘어가는 빚을 보면서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압박하는 채무관계에 대한 불안함을 도박으로 달랬다. 결국 “이제 돌아가기는 늦었다.”라고 자포자기를 하게 됐다. 급기야 살면서 늘 근면성실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던 아들은 도박에 의한 채무 관계로 2년 8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떼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시작한 도박은
빈털터리에 전과자가 되어서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무려 15년만이었다.

가족의 이름으로

“거울을 봤는데 제 얼굴이 참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상문 씨는 구치소에서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떼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시작한 도박은 빈털터리에 전과자가 되어서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무려 15년만이었다.
출소 후 KLACC의 도움을 받아 재활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도박을 끊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또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카지노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무렵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머니와 딸에게 연락이 왔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속사정을 먼저 알아챈것이었다. 도박 중독에 빠져 불편하신 몸 한 번 보살펴드리지 못한 어머니와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어두운 여정을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내 편, 그 든든함으로 상문 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새로운 삶을 찾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는 카지노 영구정지 신청을 했다.
“이제 도박이 하루의 숙제처럼 느껴져요. 도박이 생각날 때마다 더 좋은 생각으로 바꾸자는 숙제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하잖아요.
오늘 힘들어도 내일의 해를
기다리면서 살아야죠.”

“한 걸음씩 천천히”

어머니를 조심스레 부축하며 오른 영남루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고즈넉한 멋이 있는 장소였다. 하늘은 흐렸지만 공기는 맑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하잖아요. 오늘 힘들어도 내일의 해를 기다리면서 살아야죠.”
어머니의 말처럼 상문 씨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그는 요즘 도박에 빠져 잃어버린 14년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하이원베이커리에서 배송일을 하고 있다. 처음 경험하는 업무 환경에 힘이 벅차기도 하지만 평범한 생활에 녹아드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죄책감과 빚진 마음은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지만, 앞으로 긍정적으로 변할 하루를 생각하며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은 도박에 깊게 중독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변명일 뿐이다. 지금은 “하루에 한 걸음”을 습관처럼 말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한 걸음씩을 생각하다 보면 이루고자 했던 일이 이뤄질 것이라며.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남아있지만, 그는 서두르거나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 걸음씩 천천히 해도 괜찮다.”
어머니의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상문 씨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곁에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