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 속으로 파고 드는 일 중독증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현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누구에게나 일은 중요하며, 평생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우리나라의 직장인 평균 근로 시간은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길다고 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오늘 하루도 긴 시간 열심히 일한다. 일을 하며 얻는 성취감과 보람, 일에서 받는 구속감과 스트레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속 성과주의 풍조는 성취감과 보람보다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나타나는 것이 일 중독증이다. 일 중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처럼 보내기도 한다.
일 중독증은 일(Work)과 알코올 의존(Alcoholic)의 합성어로, ‘과잉적응증후군’으로도 불린다. 일에 과하게 집착하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며,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한 나머지 여가와 인간관계, 건강까지 해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웨인 오츠는 1980년대 출판한 자신의 저서 <워커홀릭>을 통해 이 단어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책에서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신의 모든 가치 기준을 일에 두는 업무제일주의는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병”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페터 베르거는 일 중독증을 3단계로 분류했다. 1기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하는 경우, 2기는 자신이 일 중독증에 걸렸다고 자각해 일부러 취미나 봉사활동에 매달리는 경우, 3기는 어떤 일이든 환영하며 주말과 밤에도 일을 하고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건강이 무너질 때까지 일에 매달리는 경우다. 또 유형에 따라서는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블루칼라형’, 휴가가 일하는 것보다 거북스러운 ‘프리랜서형’, 할 일이 많고 머릿속이 복잡하나 서성대기만 하는 ‘햄릿형’으로 나눴다.

일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신체적·정신적 질병 초래

일 중독증은 단순히 오랜 시간 일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 중독증은 경제력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 완벽을 추구하거나 성취지향적인 사람, 자신의 능력을 과장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일에 대한 집념과 강박이 강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일 중독자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일에 둔다. 일에 몰입하면서 만족을 느끼고,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일 중독증에 걸리면 성기능 장애 등의 신체적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관계가 멀어지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과로와 스트레스, 거기서 야기되는 각종 스트레스 증후군들도 문제다. 항상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에서 떠밀리듯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신체 저항력이 떨어지는 40대 이후에는 각종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당했을 때는 자신의 존재 이유인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일 중독증 3단계에 해당됐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하루 종일 그날 방송을 위한 준비, 본방송, 그 다음 날 준비까지 일과의 모든 시간이 자신의 토크쇼에 맞춰져 있었다. 방송 코너 하나 하나가 그녀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성공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약혼자는 그녀에 대해 "일 중독증에 빠진 그녀는 사랑이 주는 행복과 안락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일 중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일 중독증, 이렇게 벗어나자!

자신이 일 중독증에 빠질 위험이 있거나 빠져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인생관과 생활태도를 바꿔야 한다. 일하는 시간과 여가 시간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쉴 때는 일 걱정을 잊고 충분하게 쉴 수 있도록 한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늘리고 대화를 많이 한다. 일과 관련된 인간관계 이외에 친지나 친구와 자주 만나 터놓고 얘기하는 기회를 만든다. 휴대전화를 잠시 두고서 산책하고 그 시간을 늘려가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과 장소를 갖거나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다.
항상 ‘성공해야 한다’거나 ‘저 사람에게는 질 수 없어’ 식의 대결지향적이고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자세는 버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여유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눈앞의 일에 지나치게 구애 받지말고 장기적 안목에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는 습관을 갖는다. 규칙적인 운동, 매일 적어도 5분 이상의 명상, 6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 1년에 1주 이상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만약 중독 증세가 심하다고 생각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일은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일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건강을 해친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OECD 국가 워라밸 지수(2019)

2019년 OECD가 세계 40개 국가 대상으로 워라밸 상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하위
5개 국가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가장 큰 요인은 장시간 근무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