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떠나요

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이렇게 사소한 행복이 가득하더라
동해 추암해변

글. 편집실
사진.홍영기

행선지를 삼척과 동해로 고른 데에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가까우니까. 장미나 유채꽃을 보러 여태껏 몇 번이고 와본 곳이지만 이번만큼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감상한 적이 없다.

분명 낯선 여행지가 아닌데도 이번의 여행길은 참으로 생경하고 각별했다. 바닷가와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내내 느른하니 여유롭다. 깊게 울리는 파도 소리와 물살에 자갈 구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고, 온갖 명물 앞에 세워진 안내판의 깨알 같은 글씨도 찬찬히 읽어보았으며, 대를 이어 동해 추암해변에 살고 있다는 오리 가족들의 이야기에도 처음으로 눈길을 주어보았다.

세 사람이 처음부터 친구였던 건 아니다. KLACC의 단도박 모임에서 만난 세 사람은 KLACC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종종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곧 서로의 나이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지내던 사람의 권유로 카지노에 들어서고, 반년 가까이 강원랜드를 함께 오가면서도 직접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녀는 대단한 이유로 도박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느 날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게임을 구경하던 중, ‘별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빠질까?’ 하며 무심코 건드려본 것이 시작이었다. 언제부터 도박에 ‘중독’되었는가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기웃거리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얼마 뒤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바뀌면서 그녀의 삶 속에 카지노는 점차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주 사소한 계기가 시선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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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CC과의 첫 만남에도 대단한 사연이 있지는 않다. 카지노에서 만난 사람들과 꾸린 모임에서, 우연히 어떤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KLACC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수차례 KLACC의 프로그램을 함께 해보고도 당장 단도박을 할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카지노를 오가던 그녀가 사채에 손을 대기 전, 빚을 갚기 위해 처음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번 날의 일이었다. 카지노에서 걸고 잃었던 그 큰 돈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액수였지만, 땀 흘려 번 돈을 손에 쥐고 나니 이 돈을 도박에 쓰는 것이 순간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고. 그때부터 돈을 보는 그녀의 시선도 달라졌다. 내 손으로 번 돈에 액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뒤 KLACC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조금씩 카지노 바깥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내 주위에도 행복을 느낄 만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하면서 사는 것.
작지만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하는 것. 그래요. 그게 행복이죠!”

일전의 영서 씨에게 행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었다. 재미와 즐거움이 있는 순간을 끊임없이 쫓으며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도박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행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함께한 친구들도 그 행복 중 하나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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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세 사람은 카지노로 돌아가 버린 주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섭섭함과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도박에 다시 빠지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아요” 쓸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영서 씨에게도 단도박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손 닿는 곳, 눈에 보이는 곳 도처에 도박이 있었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가며 도박에서 계속해서 눈을 돌려야 했다. 단도박은 그 동안 만들어온 인간관계와의 단절이기도 했다. 카지노와 멀어지면서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연락이 점차 잦아드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사람과 깊이 얽힌 도박을 떨쳐내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서 씨는 단도박은 누군가의 말로 시작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결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주변 사람들은 도박 이외의 행복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기를 당부했다.

크고 화려한 행복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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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빠져 있었던 과거를 후회해요. 하지만 저는 그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았고, 어쩌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요. 과거는 솔직하게 후회해요. 그뿐이에요!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순간이니까” 지금도 도박의 유혹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는 영서 씨는, 그럼에도 지금의 자신은 그 유혹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떨쳐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치로운지, 무엇이 행복을 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타와 스포츠댄스, 합창하며 하루에도 두세 개의 소모임에 참여하는 영서 씨는 이 빠듯한 일정을 ‘행복한 바쁨’이라고 표현한다. 그녀가 매일 같이 되새기는 문장이 있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단 한 송이의 꽃도 꽃잎을 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듯이, 영서 씨의 올해의 목표는 최선을 다해 살고, 어울리는 것이다. 계절은 어엿한 여름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누군가의 계절은 여전히 봄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오늘도, 내일도 봄처럼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