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미영(조이뉴스24)
사진제공.컴퍼니온
이제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다.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마친 뒤 곧장 영화 <탈주>로 옮겨가 극장 관객을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올해로 데뷔 19년차, 공백 없이 부지런히 달려왔다. 치열하게 연기했고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지난해엔 <모범택시2>로 연말 시상식 대상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본업' 배우 외에 소속사 대표라는 명함도 생기면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열흘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장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여유로운 휴가를 상상하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직원 회식을 즐기는 소박한 하루도 충분하단다. "연기를 오래 하고 싶고, 연기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고 싶다"는 소중한 꿈이 있기 때문. 이제훈은 바쁜 나날들 속에서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한국의 콜롬보' 박영한이, 이제훈을 통해 2024년
안방에 다시 살아났다. 시그니처였던 '파~하' 웃음에, 바바리코트까지 척
걸쳤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권력에 굴하지 않고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젊은 박반장이다.
5월 종영한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은 한국형 수사물의 역사를
쓴 <수사반장>의 프리퀄이다. 1958년을 배경으로 박영한이 부패
권력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깨부수며 민중을 위한 형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MZ세대들에겐 아날로그 수사의 낭만으로 카타르시스를, 박 반장
활약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안기며 전 연령대를 사로잡았다.
"똑같이 연기하려고 하면 할수록 표현에만 매몰된다는 기분이 들었죠”"
결과물을 아는 시청자들은 '엄살' 정도로 느끼겠지만,
이제훈이 느낀 부담감은 어마어마 했다. 무려 20년간 사랑받은 드라마의
상징인 박영한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배우에게도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훈은 최불암이 연기한 원조 박영한
캐릭터를 완벽 소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톤, 말투 등을 복사본처럼 따라
했다. 이제훈은 "그런데 아무리 해도 최불암 선생님처럼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의욕이 앞선 그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가 찾은 정답은 '최불암' 그
자체에 있었다.
"똑같이 연기하려고 하면 할수록 표현에만 매몰된다는 기분이 들었죠.
'내가 헛발질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커졌어요. 어릴 적 봤던
<그대 그리고 나>와 <최불암 시리즈>를 떠올렸고, <한국인의
밥상>도 봤어요. 선생님의 다양한 모습이 박영한의 젊은 시절에
투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영한의 본체'인 배우 최불암과의 만남은 큰 단서가 됐다. 최불암은
그에게 '범인을 잡아내고 싶은 화를 깊이 새기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이제훈은 '2024년의 박영한'이 될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원조 박반장'
최불암과 함께 있는 장면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이제훈은
"나도 모르게 안아주면서 사랑한다는 애드리브가 나왔다"라며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놀라운 표현이 나왔다"고 '교감'을
이야기했다.
이제훈은 드라마 <모범택시> 시리즈에서도 악인들을 단죄하는
정의로운 택시 기사를 연기했다. 비슷한 지점이 있는 인물들로, 이제훈은
정의로운 캐릭터, 히어로물에 끌린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모범택시>는 배트맨 같은 느낌, <수사반장>은 슈퍼맨
느낌으로 했어요. 이런 사람이 있다면 더 깨끗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도 그런 세상을 꿈꾸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어요"
작품을 빠져나온 '현실' 이제훈에게도 정의로운 면모가 있을까.
의식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실제의 삶에 투영된다.
"배우 일을 하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남들을 의식해요. 사소한 예로, 늦은 밤에 차 없는 차도를 건널 수도 있는데 주위를 살피게 된다던지 하는 행동이요. 이런 삶이 '불편하지 않나' 스스로 반문한 적이 있는데 사실 물어볼 가치가 없는 거죠. 당연하니까. 옳고 그름이 분명한 상황이라면, 최소한 그릇된 것을 선택하진 말아야죠"
이제훈은 공학도의 길을 걷다 2학년 때 자퇴하고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하며 연기의 길에 뛰어들었다. 독립 영화계에서
수년간 이름을 날렸던 이제훈은 2011년 개봉한 영화 <파수꾼>과
<고지전>으로 충무로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제훈은 데뷔
19년간 배우로서 원칙주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왔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몫을 온전히 해냈다. 그렇게 평생 연기자 외길만 걸을
것 같던 이제훈이 매니지먼트사 대표라는 명함도 달았다. 벌써 컴퍼니온을
운영한지 4년차다. 1인 기획사로 출발해, 배우 이동휘도 영입했다. 엔터
업계를 움직이고 싶다는 야망이 아닌, "좋아하는 연기를 함께 잘 해 나가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했다.
"'평생 연기할 거니까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만들어보자'라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고정지출비가 늘고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식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웃음)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아도
회사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기회가 되면 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응원하며 이어나가는 삶을 꿈꾸죠"
바쁜 나날들 속 온전한 '쉼'을 꿈꾸기도 한다. 이제훈은
"개인적인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멀리 여행을 하는 것을 꿈꾸는데, 아직 그
시간이 주어지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웃었다.
"요즘엔 여유가 생기면 회식을 해요.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존재하고 일할 수 있잖아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요. 예전에는
배우로서 제가 케어를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서포트를 해줬으면
좋겠어' 요구를 했다면, 이젠 제가 서포트를 충분히 해주고 싶어요. 잘
보듬어주면서 으쌰으쌰 하는 거죠"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면서, 부쩍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지난해 10월 허혈성 대장염으로
긴급 수술을 받으면서 몸을 돌아보게 됐다.
"갑자기 아프면서 한 달간 촬영을 못했어요. 나도 모르는 교통사고 같은
거라지만, 미리 예방할 수 있게 스스로에 대한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예전보다 채소도 많이 챙겨먹고요. 오늘도 토마토와 당근을
삶아서 먹고 왔어요. 어머니께 부탁해서 녹즙기도 사려고요.(웃음)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활동을 하고 싶어요"
업계 불황에도 이제훈은
차기작만 5편이다. 영화 <탈주>로 7월 극장가를 찾고
<모럴해저드> 공개도 앞두고 있다. 새 드라마 <협상의 기술>
촬영을 시작했고, <모범택시> 시즌3 출연을 확정했다. 그토록
염원했던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 시즌2 제작도 시작됐다.
빼곡한 스케줄에도, 이제훈의 연기 욕심은 끝이 없다.
"하루라도 젊을 때 온전한 로맨스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제훈 배우는
이미 다른 연기 할 거 있잖아' 단정짓지 말고 꼭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