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편집실
출처. 신철호의 초현실토크
“눈앞의 장애물을 정 못 넘을 것 같다면, 까짓거 돌아가지 뭐”
팔색조라는 비유가 이토록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사에
초연한 듯한 표정, 덤덤한 말씨가 눈에 띄지만, 무대 위에서는 도무지
일흔의 나이를 연상할 수 없는 격정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김창완은 어떤 날에는 갈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가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우직한 소나무가 떠오르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데뷔 47년 차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대중이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까닭은, 그 수없는 면면 아래에서 묵묵한
위로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가수이자 배우, 라디오 DJ, 작가 싱어송라이터....... 한두 가지 단어로는 김창완이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대한민국 곳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그마치 이십삼 년간 도맡기도 했다. 방송 마지막 날, 조용히 기타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비치는 모습이 공개되며 수많은 대중들의 심금을 울린 그는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 곧 삶의 기둥이라고 말한다. 몽롱한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하는 양치질, 늘 보는 마룻바닥과 미명에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익숙한 것들에게 오감을 여는 것, 그것이 김창완이 매일 같이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 일상이 이를테면 동그라미들이다. 무수히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멀찍이서 한번 보자. 눈에 띄게 반듯하게 그려진 동그라미가 있는가 하면, 당최 무슨 모양인지도 분간되지 않는 못난 동그라미도 있다. 그런데 동그라미가 좀 흐트러진 모양새라고 해서, 그릴 때조차 동그라미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창완은 ‘세상은 어떻게든 변하는 법인데 대관절 완벽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담담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의 음악도 그랬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하게 태어나기에 더 완벽해지려고 손을 거드는 순간 ‘공연한 덧칠’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사랑이라는 단어가 품는 의미가 점점 거창해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는 운명 같은 만남, 사랑이라는 확신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라면 기꺼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든지, 그런 대단한 마음보다는 그저 서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좋고, 함께 있기에 삶에 걱정이 없는 뜬구름 같은 심경이 사랑에 가까웠단다. 젊은 시절의 김창완은 ‘내가 왜 노래를 계속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노래하는 순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과 황홀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김창완이 노래를 부르며 느낀다는 까닭 모를 행복감도 사랑의 일종이 아닐는지.
자기는 염세주의자였다고 밝힌 김창완은 하루하루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아픔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고통이라고 말한다. 혹시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들이 온 마음을 헤집고 돌아다닌다면, 녀석들이 다른 좋은 순간을 해치지 않도록 그것을 담아둘 자리를 마련하라고 권한다.
방 한 칸 마련할 자리가 없다면 자그마한 서랍이나 상자, 봉투 하나라도 좋으니 이별이나 콤플렉스 같은 아픔은 일단 거기에 넣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 서랍을 열었을 때, 아픔이라 여겨두고 담아두었던 것들이 무르익고 성숙해, 마치 오래 숙성한 술에서 깊은 향기가 피듯이 나를 향긋하게 달래어주기도 할 것이다.
눈가의 주름을 보니 그의 적지 않은 나이가 새삼스럽다. 그런데 어깨에 힘을 빼고, 드러눕듯 앉은 김창완의 모습 어디에서도 연륜의 과장이나 뽐냄이 없다. 오히려 ‘청춘은 그래야 한다’라는 틀과 고정관념을 제법 단호한 어조로 부정한다. 그를 이 시대 ‘좋은 어른’의 모범으로 꼽는 것이 젊은이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까. 물론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방식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