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원모
유럽, 미국이 ‘디지털 플랫폼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디지털 플랫폼의 중독적 디자인을 규제하는 내용의
이니셔티브*를 압도적 찬성률로 채택했다.
오는 6월 구성되는 차기 의회에서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관련 움직임이 분주하다. 캘리포니아주(州) 등은 최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 플랫폼스(이하 메타)를 고소했다.
“메타가 디지털 플랫폼에 중독된 아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내부시장·소비자보호위원회(IMCO)가 채택한 ‘디지털 플랫폼의 중독성을
완화하기 위한 이니셔티브(이하 이니셔티브)’를 찬성률 84.1%(찬성 545표,
반대 12표, 기권 61표)로 원안 가결했다.
IMCO에 따르면 유럽 16~24세 4명 중 1명은 하루 7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디지털 플랫폼 중독’에 빠져 있다. 여기서 디지털 플랫폼은
게임,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앱 등 디지털 기반의 모든 플랫폼을
말한다.
이니셔티브는 술, 도박 등과 달리 디지털 플랫폼에 중독 예방을 위한
규제가 없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의회 통과를 주도한 네덜란드 녹색당의
킴 반 스파렌탁 의원은 “소셜 미디어 앱을 열고 게시물을 스크롤할 때나
새로고침 할 때마다 우리 뇌는 슬롯머신을 당길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며 “그러나 슬롯머신과 달리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가장 심각한 건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의 무한 재생, 자동 스크롤 기능은 알고리즘이 골라낸 맞춤형 영상을
끊임없이 노출함으로써 이용자를 플랫폼에 묶어 둔다. 이른바 ‘토끼굴
효과*’다. 이는 집중력 저하,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중독에 취약한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럽의회는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 2024년 AI법을 통해
불법·유해 온라인 콘텐츠 및 AI 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두 법
모두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대한 내용을 일부 담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게 의회의 판단이다.
이니셔티브는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 중독을 막기 위해 윤리적이면서
공정한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푸시 알림 금지
△시간순으로 게시물 노출 △그레이스케일 모드 △일정 시간 사용 시 경고
또는 플랫폼 잠금 등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것을 밝히고 있다.
반 스파렌탁 의원은 “개인 노력만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중독을 극복할 수 없다”며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독성 디자인은 현시대의 도전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
이니셔티브(initiative) 국가나
지방의 유권자가 서명을 통해 청구하는 방법으로, 법률의 제정과
개폐를 제안하는 일
*
토끼굴 효과 특정 알고리즘 때문에
이용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상태
미국도 디지털 플랫폼 중독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 등 41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는 메타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중독성 강한 알고리즘을 설계, 청소년들을 앱 중독에 빠지게
했다며 지방 법원과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주도한 콜로라도주 법무부 장관 필 와이저는 기자 회견에서 “메타는
담배·전자담배 업체처럼 대중의 건강을 희생하며 이익을 극대화하기로
결정한 기업”이라고 맹비난했다. 애리조나주 법무부 장관 크리스 메이스도
“메타는 중독된 어린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해왔다”고 주장했다.
시애틀시 교육구도 같은 해 1월 메타와 구글 모회사 알파벳,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 스냅 등을 고소했다. 교육구는 “소셜 미디어
중독으로 불안, 우울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금전적 손해 배상,
소셜 미디어 과잉 사용 예방 및 치료를 위한 기금 조성 등을 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이니셔티브 통과를 이끈 몰타 노동당의 알렉스 살리바
의원은 “디지털 플랫폼 중독은 실재하는 문제”라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은 중독적 디자인의 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