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감정 보여주기

우선 배우자의 행동과 의도를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부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좋은 행동은 좋은 의도로, 나쁜 행동은 나쁜 의도로 해석하는 프레임을 통해 상황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이러한 프레임은 자칫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행동과 의도는 매번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서로 화를 내고 흥분하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내면에는 어떤 이유가 존재할 지는 모릅니다. 특히 대다수의 부부는 악한 의도를 갖고서 배우자를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부부에게 서로의 의도는 행동과는 별개로 파악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 이유로 부부는 각자 내면에 자리한 1차 감정과 외적 표현인 2차 감정을 구분해야 합니다.
불화를 겪는 부부가 주로 표현하는 감정은 대개 2차 감정입니다. 2차 감정은 분노, 짜증, 비난처럼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2차 감정은 대개 1차 감정에 기반합니다. 그렇다면 1차 감정은 무엇일까요? 1차 감정은 우울, 불안, 서운한 감정처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진솔하고 연약한 감정입니다. 갈등 상황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진솔한 감정은 대개 1차 감정이지만 애착이 깨진 상태에서 부부는 1차 감정이 아닌 2차 감정만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의도는 1차 감정이지만 언제나 행동은 2차 감정인 것입니다. 분노, 짜증 등의 2차 감정만을 주고 받은 부부는 결국 불화가 더욱 깊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1차 감정으로 대화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슬프다’, ‘서운하다’, ‘아프다’ 이러한 표현은 배우자의 내면에 깊이 전달됩니다. 만약 짜증이나 비난으로 표현한다면 아무리 큰소리로 말해도 배우자의 고막에서 튕겨져 버릴 겁니다. 만약 화내고 짜증내는 배우자에게 잠시 진정할 것을 요청하고 1차 감정으로 대화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면 불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둘 중 누구라도 그러한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애착을 회복하여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

지금부터 용기를 내어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해도 또 다른 시련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뢰인께 한 가지를 당부합니다.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뢰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는 안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배우자의 모습에 너무 실망하지 않길 바랍니다.
의뢰인이 단도박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단도박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배우자가 진정으로 믿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의뢰인께서는 이를 유념하고 배우자를 조금 더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전쟁이 끝나도 전쟁에 시달린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듯이 의뢰인께서 단도박에 이르러도 배우자가 두려움을 내려놓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부부 모두에게 당부합니다. 대개 도박을 포함한 중독 행위는 치유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호전과 재발을 반복합니다. 도박으로 인한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포함하여 법적 문제, 가정 불화 등은 부부 애착을 손상시킵니다. 부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애착을 회복하고 안전기지를 만들고자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장애물과 마주합니다. 그들은 부부가 뜻을 모아 잘해보려고 하면 여지없이 나타나서 방해합니다. 부부 역시 그들만 만나면 무력해집니다. 그들은 바로 부부의 내면에 남아 있는 과거 자신의 모습입니다.
수년 전, 진료실에 남편의 욱하는 성격과 폭음을 이유로 내원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부상담 외에도 개인상담 및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금주를 이어나갔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아내의 인정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말했습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화내고 술 마실 것이 뻔해요. 술 끊는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지금도 과거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치밀어요.”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남편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남편이 상심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더 이상 기대를 하고 싶지 않은 아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경계심을 내려놓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부부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할수록 고통만 가득했던 과거의 자신이 더욱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그리고 속상해하는 부부에게 과거의 자신은 속삭입니다. 의심을 거두지 말라고, 언제든지 다시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자신이 속삭이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재까지 연결된 과거의 끈을 잘라내고 과거의 자신과 이별해야 합니다. 아쉬워도 과거는 이미 망쳐버렸다는 것을 수용하고 현재의 긍정적인 변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의심이 아닌 칭찬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간다면 분명 부부는 애착을 회복할 것입니다.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의뢰인의 가정에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는 위에 기술된 내용보다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많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노력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머지 않은 계절에 의뢰인의 가정에도 꽃이 화려하게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