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룰랭의 초상화>, 1888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고흐. 그는 37세의 짧은 생애 동안 외로움, 고독과 싸우며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부어 그림을 그렸다. 1888년 2월, 고흐는 야간 열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로 떠난다. 고단했던 파리에서의 삶을 벗어나 풍부한 빛과 색채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를(Arles). 그의 명작들이 모두 그곳에서 탄생했다.
고흐는 외골수 기질이 강해 낯선 땅에서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자주 찾던 선술집에서 푸른 제복을 입은 사나이와 가까워진다. 바로 우체부 조셉 룰랭이다. 애주가였던 룰랭은 고흐보다 10살 정도 나이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고흐는 룰랭의 외적인 모습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았고, 함께 대화를 하면 철학적인 면을 엿볼 수 있어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고 한다.
조셉 룰랭은 아는 사람 없이 외롭게 지내는 고흐를 살뜰히 챙겼다. 고흐의 말벗이 되어줌은 물론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룰랭의 가족들도 고흐를 반갑게 맞아줬다. 고흐는 룰랭의 초상화만 6점을 그렸고, 그의 부인과 자녀들의 초상화도 다수 그릴만큼 애정과 신뢰를 가졌다.
고흐는 화폭에 룰랭의 푸근한 인상을 잘 표현했다.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애주가였던 룰랭의 붉은 코와 뺨, 살짝 풀린 눈, 곱슬곱슬한 수염, 모델 역할이 어색해 다소 경직되어 있지만 제복을 갖춰 입은 진지한 모습까지, 인간 룰랭의 모습을 세심한 터치로 그려냈다. 더불어 고흐는 룰랭의 초상화 배경에 레드, 블루, 화이트 등 형형색색의 꽃을 그려 넣어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룰랭의 도움으로 아를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 고흐가 벼랑 끝에 몰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강렬한 우정을 나눴던 폴 고갱이 말다툼 후 떠나자 우발적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피했다. 고흐가 가장 힘들어 했던 그때, 룰랭과 가족들은 끝까지 곁에 남아 고흐를 보살폈다.
고흐는 아를에서 지낸 15개월 동안 약 200점의 회화, 100점의 드로잉과 수채화를 그리고, 2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걸작, 그 뒤에는 낯선 이방인이었던 고흐를 따뜻하게 맞아준 좋은 벗 ‘조셉 룰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