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하고 나하고, 설렘 가득한 여행

쇠갈고리를 끌며 사이좋게 갯배 체험을 하는 모자.

소나기가 이따금씩 내리던 여름의 막바지, 영민 씨(가명)와 어머니가 속초 여행에 나섰다. 평소 함께 여행을 즐기던 모자가 코로나19로 잠시 미뤄뒀던 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이게 얼마만의 여행인지 모르겠어요. 어제 잠을 못 잤다니까요.”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영민 씨도 즐거운 눈치다.
모자가 찾은 여행지는 속초 아바이 마을이다. 20년 전에 방영했던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였던 아바이 마을은 함경도 실향민들의 제2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함경도 사투리로 나이 많은 남성을 아바이라고 하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들이 이곳에 집단으로 정착하면서 아바이 마을이 됐다. 바닷가에 인접해있어 수산물이 유명하며, 냉면과 아바이 순대, 오징어 순대, 식해와 젓갈 등 함경도식 실향민 음식들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바이 마을에서 탈 수 있는 갯배다. 속초 시내와 아바이 마을 사이에 놓인 속초항 수로를 넘나드는 도선으로 탑승자가 쇠갈고리로 와이어를 당겨 배를 반대편 선착장까지 끌고 가야 한다. 영민 씨는 아바이 마을의 상징인 갯배 체험을 어머니와 꼭 같이 하고 싶었다. “어머니, 이 쇠갈고리를 저랑 같이 끌어당기시면 되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쇠갈고리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자 배도 조금씩 움직인다. 천천히 배를 끌며 웃음을 보이는 두 사람의 앞에 아바이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

땀의 가치로 도박의 흔적을 지우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영민 씨는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통해 카지노에 대해 알게 됐다. 카지노를 일반인이 갈 수 있는지도 몰랐던 때였다. 말 그대로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동료의 이야기에 솔깃한 영민 씨는 2012년 여름, 동료 3명과 처음 카지노에 방문했다. 그는 준비한 30만 원을 다 잃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한 달 후, 영민 씨는 동료들과 다시 카지노를 찾아간다. 그날 50만 원을 따고 재미를 붙인 그는 좋은 공기를 마시며 바람도 쐬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카지노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든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틈날 때마다 카지노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카지노 워’라는 간단한 게임을 하다가 ‘블랙잭’을 하고, 혼자 카지노를 찾았을 때는 ‘바카라’도 접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돈이 없으면 지인에게 빌려서 게임을 하고,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몰입했다. “제 의지가 그렇게 약한 줄 몰랐어요. 돈을 잃고 다시 땄다가 다 잃는 과정을 무한반복 했던 거 같아요. 막판에는 정말 제 의지와 상관 없이 게임을 했죠.”
어느 날, 영민 씨는 카지노에서 천만 원을 순식간에 잃자 체념했다고 한다.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며 결혼의 시기도 놓치고, 남은 건 빚과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그 동안 헛되게 보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단도박을 결심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빚을 갚기 위해 회사 일과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부터다. “소위 투잡을 하면서 깨달은 게 많아요. 너무 바쁘다 보니까 돈을 안 쓰게 되고, 땀 흘려 번 돈의 소중함도 배로 느끼게 됐거든요.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그 동안 제가 등한시해온 삶에 가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영민 씨에게도 단도박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처음 출입정지를 했을때는 단도박에 대한 의지도 강해 다시는 도박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정지를 풀고 또 게임을 시작했다. 다시 제자리였다.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영민 씨는 다시 클락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출입제한을 걸었다. 그리고 2017년, 영구 정지를 하며 도박의 늪에서 벗어났다. 그의 고민을 귀 기울여듣고, 함께 고민하며 힘을 실어준 클락 전문위원 덕분이었다.
그는 진정한 단도박을 위해서는 일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박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박 자체가 생각나지 않도록 일상에 집중하며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이다. 한 번 도박에 손을 대면 만족을 하기 어렵고, 스포츠 토토처럼 쉽게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 언제든 다시 도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박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며 재미로라도 하지 않기를 강조했다.

참고 견디면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영금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 하고 천천히 걸어본다.

갯배를 타고 아바이 마을을 구경하며 추억을 남긴 모자는 속초의 또 다른 명소인 영금정으로 갔다. 동명항의 끝자락에 자리한 영금정은 속초등대 밑 바닷가에 크고 넓은 바위들이 깔려있는 곳이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 신비한 소리가 들렸고, 이 소리가 신령한 거문고의 소리와 같다고 하여 영금정으로 불린다. 바위 위에 설치된 구름다리끝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 정자로 가는 길, 정자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 등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영민 씨와 어머니는 두 손을 꼭 마주잡고 정자로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는 “아들이 심적으로 얼마나 외로우면 그랬을까 싶어요. 제게는 늘 효자였는데, 도박을 했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죠. 전혀 티를 낸 적이 없었거든요.”라면서, 이제는 완전히 도박을 관뒀다는 말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에 영민 씨는 “지나간 일은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제게는 그런 힘든 시간들도 소중한 경험이 됐어요.”라며, 앞으로는 돈을 열심히 모아 선행을 베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참고 견디면 일상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영민 씨. 어머니와 함께 걷는 이 길이 그의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지길 바라본다.